[공감] 부산 연극과 전용 극장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남석 문화평론가

연극 전용 극장 건립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하자, 부산 연극인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부산 연극계의 숙원인 전용 극장이 드디어 건립되어 연극인의 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그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난 많은 공약(空約)처럼 공염불로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공연 단체나 연극인에 비해, 극장과 무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많은 연극인들은 자신들이 마음 놓고 연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기존 극장은 시설과 규모에서 적정하지 않다고 성토한다. 그러면서 부산 연극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불편한 제약 없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극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극인의 주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없다. 부산 연극계를 위해서도 시설과 규모, 편의도와 인지도를 두루 갖춘 극장이 생긴다면, 연극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서 연극전용극장 건립 논의 활발

지역 연극제작 환경부터 살펴야

전용극장 운영방안·철학 숙고 필요

다만 부산 연극인들이 간과한 사실도 있다. 그것은 무대를 탓하기 이전에 그 무대 위에 올라야 할 연극과 그 연극을 만드는 제작자 그리고 그 제작 환경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에 적지 않은 소극장이 있지만, 이러한 소극장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는 사실 관심이 덜한 편이다. 기존의 극장을 나누어 쓰는 방식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하며, 현재의 극장과 인프라를 보완 수리하는 데에는 인색하여, 새로운 시설과 지원을 바라는 마음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공간을 바라는 마음과 기존의 시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마음이 제대로 융화되지 못하여, 새로운 극장의 건립만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산 연극인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용 극장을 반드시 얻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일단 극장부터 받고 보자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부산시의 약속 남발도 단단히 한몫했다. 이전부터 전용 극장을 짓겠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그 논의가 번번이 무산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 연극인들은 일단 지을 수 있을 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으며,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자’는 무리한 욕심도 숨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졸속으로 지은 공공건물이 때로는 짓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는 일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극장을 지어야 한다면, 왜 지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지어야 하는지, 짓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때로는 그러한 극장이 지닌 진실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또한 뒤따라야 한다.

부산 연극인의 전용 극장 요구는 원칙적으로는 정당하다. 하지만 성급한 노 젓기나 선거용 떼쓰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공공 전용 극장을 추진하는 당국도 이전처럼 헛된 공약이나 시의성 정책을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듯, 선심성 공약, 외골수 정책, 잘못 판단된 사업의 피해자는 그 공약과 정책과 사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이고, 설립 이후에도 출혈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부산 연극의 전용 극장이 하루속히 설립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하루속히’는 목적과 대상, 운영 방침과 극장 철학이 충분히 논의되고 면밀하게 준비된 이후부터의 ‘하루속히’이다. 그렇지 않다면, 겉만 그럴듯하게 지어진, 또 다른 고가의 건물 앞에서 인증 사진만 찍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날만 ‘하루속히’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