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정쟁에 막힌 부산 현안, 시·상의 함께 뚫어내야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 등 부산의 시급한 현안들이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가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를 남겨 둔 상황에서 채상병특검법 등을 둘러싸고 막판까지 대치 국면을 이어 가면서 부산 현안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부산 현안들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시와 상의는 지난 3일 부산상의에서 정책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결의했다. 부산의 주요 현안들이 정쟁으로 꽉 막힌 상황을 시와 상의가 힘을 합해 뚫고 나가야 하는 시점이어서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시와 상의의 공동선언문은 △산업구조 전환 및 고도화 등 산업혁신 기반 조성 △물류거점 가덕신공항 착공·북항 재개발·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등 핵심 인프라 조기 구축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공동 대응 △교육·생활·관광·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화 기반 구축 등이 골자다. 부산이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할 주요 현안을 압축한 내용이다. 이 자리에서는 에어부산 분리매각, 대기업 본사 부산 유치 등 구체적 전략에 대한 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분출되기도 했다. 부산 현안에 대한 신속한 해결 없이는 쇠락하고 있는 지역 경제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요구들이다.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후 정부와 시는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특별법 제정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글로벌 허브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 기반부터 조성돼야 하는데 특별법 국회 통과부터 막혔다. 산은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2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은 정부와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에도 불구하고 입법화가 지연됐다. 결국 21대 국회 통과가 무산되면 22대 국회에서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으로 더 쏠린 부산의 정치 지형을 감안하면 22대 국회에서도 지역 현안 처리가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와 상의의 공동선언을 계기로 지역 현안에 대한 세부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지난 총선에서도 확인됐듯이 지역 현안과 관련해서는 여야 지역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 정치권 차원에서 부산 현안들을 외면할 수 없도록 명분을 갖고 몰아붙여야 하는 일이다. 구체적 대안과 전략을 갖고 밀어붙이면 가능하다. 더 나아가서는 아직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에 실질적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세부적 노력도 더 필요해 보인다. 특별법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와 상의의 공동선언이 선언적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을 통한 결실로 매듭지어져야 할 것이다.
[사설] 청년문화진흥협회 출범… 부산 젊은 층에 희망 주기를
언론·교육·금융·경제 분야 등을 아울러 부산의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사)청년문화진흥협회가 3일 출범했다. 청년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문화에 대한 향유권을 신장시킴으로써 부산의 청년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 출범 취지다. 부산이 출생률 급감과 초고령화로 지역소멸 위기에 처해 있고, 그래서 부산의 미래가 젊은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협회 출범에는 청년들을 부산에 머물게 하고 몰려들게 하려면 일자리나 주거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문화 환경의 개선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뒷받침돼 있다. 지역사회 각계각층이 힘 모아 청년문화 진흥에 뜻을 같이한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부산의 모든 현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청년’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부산이 활력 넘친 도시로서의 옛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떠나는 청년들을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양질의 일자리와 주거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인재-취업-정주라는 시스템이 구조적인 선순환을 이룰 때라야 부산은 청년이 정착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재삼재사 거론할 여지가 없는 얘기다. 하지만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겠으나 이와 함께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정신문화적 영역이다. 지역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고 만끽할 문화적 토대가 함께 만들어진다면 청년 유입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협회의 문화지원 사업은 문화 복지, 네트워킹 활성화, 문화 육성, 문화행사 개최 지원으로 나뉜다. 문화복지 사업으로 청년 티켓 나눔 및 문화 소외청년 초청사업이 있고, 네트워킹 활성화 사업은 올해 하반기께 청년 공감토론회 ‘타운홀미팅’을 예정하고 있다. 문화육성 사업에서는 부산을 방문한 청년들에게 호텔이나 관광 콘텐츠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청년문화 포럼도 개최한다. 문화행사 개최지원 사업은 페스티벌 유치·개최를 지원하는데, 오는 7월 ‘2024 부산스텝업댄스 페스티벌’에 눈길이 쏠린다. 다양한 사업들이 운영될 예정지만 중요한 것은 청년들을 유인할 질적인 내용일 것이다. 청년문화진흥협회의 존재 이유는 부산을 청년이 즐길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기초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젊은 층이 유입되고 머무는 도시 부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역 사회의 각계각층이 힘을 모은 만큼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취업 프로그램과 일자리 박람회 행사까지 기획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무엇보다 부산 청년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참신한 콘텐츠 제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 그래서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를 적극 청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번 협회 출범을 통해 부산 청년들이 희망을 품고 행복해지는 기회를 얻길 기대한다.
[사설] 에어부산 분리매각, 부산시 총력·여야 공조 필수적
부산시가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위한 민·관·정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적극 대응에 나선다. 시의 미온적 대처로 분리매각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역사회의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시는 2일 박형준 시장 주재로 시의회, 부산상의,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시정 현안 소통 간담회’를 갖고 에어부산 분리매각 활동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지역 거점 항공사 존치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시의 대응이 늦은 감은 있지만 TF팀 확대를 계기로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결판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에어부산 지역 대표 주주로 분리매각의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할 시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한 미국의 승인 여부가 6월이면 판가름 날 예정인데 그 전에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담판 지어야 하는데도 시가 소극적 대처로 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시의회 긴급현안보고회에서는 시가 대한항공에 에어부산 분리매각과 관련해 공식 공문 한번 발송한 적 없고 기껏 ‘부장급’ 인사를 접촉한 게 다라고 밝혀 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2일 시의회 본회의에서는 반선호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시에 분리매각 의지가 있기는 하냐”며 질타를 이어갔다.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던 가덕신공항 착공을 앞둔 상황에서 신공항 활성화를 위해서도 지역 거점 항공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민의 힘으로 키운 에어부산이 김해국제공항 활성화를 이끌고 신공항의 추동력이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합병 추진 이후 에어부산의 성장은 오히려 발목이 잡혔다. 정작 에어부산은 전략커뮤니케이션실을 해체하는 등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준 지역사회와의 소통에는 담을 쌓고 대한항공 눈치만 보고 있다. 에어부산을 독자적 지역 거점 항공사로 분리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대구시조차 대구경북신공항 활성화를 위해 티웨이를 품에 안는 마당이다. 시는 가덕신공항을 인천국제공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관문공항으로 성장시켜 지역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도 거점 항공사가 필수다. 사실 국토교통부와 산업은행,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 명분으로 ‘가덕신공항 LCC(저비용항공사) 허브’를 약속해 놓고 먹튀를 했다. 시는 그 과정에서도 물 건너간 LCC 허브만 붙잡고 있다 때를 놓쳤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 끝이다. 국토부와 산업은행, 대한항공을 몰아붙일 명분은 충분하다. 여야 정치권도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합해야 마땅하다. 가덕신공항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회의 호소에 시와 지역 정치권이 제대로 답해야 한다.
[밀물썰물] 누들플레이션
여름이면 콩국수 집이나 냉면집 앞에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런 걸 보면 우리 민족은 면(麵)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면은 한자어다. 영어로는 누들(noodle)이다. 우리는 통상 국수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을 사용한 지는 오래됐다. 고려 말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에 “우리 고려인은 습면(濕麵)을 먹는 습관이 있다”라고 했고, 〈노걸대언해〉에서는 습면을 국슈(국수)로 번역했다. 이외에도 옛 기록에 국수는 면이나 탕병(湯餠) 등으로 나온다. 면은 국수를 지칭하는 단어이자 밀가루라는 이중의 뜻으로 사용됐다. 한반도에서 국수나 면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메밀이 주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밀가루를 재료로 한 국수 요리가 많아진 것은 해방 후 수입 밀가루가 많아지면서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메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냉면이다. 우리나라에 냉면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고려 말로, 몽골에서 전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상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이다. 여기에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관서 지방의 냉면,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의 맛이 일품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평안도는 예부터 메밀의 주산지였다. 가정에서 누구나 즐겨 먹던 평양냉면은 통상 19세기 말부터 상업적인 음식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19세기 무렵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들이 서울에도 세워졌고, 1911년에는 평양에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로 대중적인 외식 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냉면을 여름철 찜통더위 때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원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 겨울에 추위를 찬 것으로 다스린다는 뜻의 이냉치냉(以冷治冷)은 바로 추운 겨울에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찬 냉면을 먹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근 서울권 냉면집들이 냉면 가격을 1000~2000원씩 올렸다. 여름철 대표 면 요리로 꼽히는 콩국수 가격 역시 인상됐다고 한다. 서민을 대표하는 칼국수와 짜장면 가격도 올랐다. 이 때문에 국수(누들)에 인플레이션을 합친 누들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외식이 잦아지는 시기다. 지갑 열기가 참 두렵다. 정부가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서민의 허리는 휘다 못해 부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치를 줄이면 그만이지만, 누군가는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 이젠 여름철 별미마저 마음 놓고 먹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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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핵개인의 시대, 가족의 의미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직업적 강박 때문일까. 먼지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제목에 ‘시대’가 들어가는 책이 유난히 많다. 〈과부하시대〉 〈가녀장의 시대〉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고립의 시대〉 등등. 물론 ‘과부하시대’를 사는 현대인답게 모든 책은 한두 챕터씩 띄엄띄엄 읽다 말다 한다. 완독의 길은 점점 더 멀고도 험해진다. 오롯이 한두 시간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이제 공연장과 영화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업무 관련 ‘카톡’이 끊임없이 울리고, 중독성 강한 콘텐츠가 무한정 제공되는 스마트폰을 강제로나마 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정신 없는 와중에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어 직장인들의 허리가 휜다는 5월이 왔다. 치솟는 물가 탓에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가난의 달’이라는 푸념 섞인 이야기마저 나온다.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태 속에 출생률은 해마다 최저 기록을 다시 쓴다. 그럼에도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가정의 달을 맞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다시 펼쳐본다. 주인공 30대 여성은 ‘모부’(작가는 익숙한 한자어의 순서마저도 부모가 아니라 모부로 뒤집어 놓았다)를 직원으로 고용한 출판사 대표이자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녀장’이다. 작가 이슬아는 ‘아비 부’의 자리에 ‘계집 녀’를 적자 흥미로운 질서들이 생겨났다고 썼다. 가부장을 뛰어넘은 새로운 가녀장 체제에서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주인공은 1년간 먹을 주요 식재료인 된장을 담그기 위해 외가로 세 번의 ‘출장’을 떠나는 엄마에게 출장 수당을 지급한다.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처럼 엄마의 가사 노동을 공짜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집밥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보너스를 입금한다. 월급도 엄마가 아빠보다 배로 받는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가녀장의 말에도 아빠는 불만이 없다. 하이브 소속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외친 ‘개저씨’라는 혐오 표현이 최근 화제가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아저씨’로 그려진다. 딸이 가족 서열의 정점에 있기에 모부의 방은 지하에 있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그림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 이 유쾌한 소설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가부장제도 아이 울음 소리도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1인 가구는 급증했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1인 가구는 1003만 9114세대로, 전체의 41.8%에 달한다. 열 가구 중 네 가구 이상이 나 혼자 사는 셈이다. 부산의 경우 20대 여성의 1인 가구 증가율이 특히 높다. 2019년 3만 7469명이던 20대 여성 1인 가구는 2022년 4만 8996명으로, 3년 사이 30% 이상 늘었다.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이 주요 원인(부산일보 3월 8일 자 8면 보도)으로 꼽힌다. 이처럼 ‘핵가구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왔는데도 비혼이나 동거, 동성 결혼, 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나 편견은 여전하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저자 송길영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것이 지금은 불편한 단어로 인식하는 ‘정상 가정’이라는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이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를 ‘결손 가정’이라는 폭력적인 표현으로 부르던 때가 있었던 것도 지적한다. 그는 프랑스의 혼외 출생자 비율이 전체의 60%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정책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장려하는 방향으로만 일원화한다면 결과는 나아지기 어렵다”며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동성 부부 최초로 지난해 아기를 출산해 화제가 된 김규진·김세연 씨. 이들은 얼마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혈연이 중요하지 않다”며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임신을 위해 국내에서 정자 제공을 받는 것도 고려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결혼과 출산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거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휴대전화에 빠진 파트너 때문에 결혼 생활 상담사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며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세태를 짚기도 했다. 현재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와 핵개인의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정책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노트북 단상] 다문화시대 울산, 공존만이 살길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수도 울산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거리에는 중국어와 영어 섞인 간판이 즐비하다.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조선업 호황을 맞은 동구는 올해 3월 기준 외국인이 8003명으로 울산에서 가장 많다. 울산 전체로 보면 3만 766명으로 3년 새 7000명이 불어났다. 경기 침체와 일감 부족으로 조선소 독(선박건조장)이 텅 비었다는 기사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6~7년 지나 딴판이 됐다. 산업현장의 실핏줄이 된 외국인들이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업과 자치단체도 외국인 끌어안기에 공을 들인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 최초로 사내에 외국인지원센터를 차려 통역과 고충 상담을 지원한다. 동구청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초 생활 정보, 질서 등을 알려주는 ‘슬기로운 동구생활 설명회’도 외국인과 주민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사회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스리랑카 노동자와 가족 수백 명이 울산에서 자국의 설인 ‘싱할라-타밀 새해’(4월 13일)를 기념하며 고향 음식을 먹고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은 어쩐지 정겹다. 울산 현대모비스 농구단을 응원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목소리, 가자미회를 처음 먹어보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울산의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활력을 느낀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 혐오로 점철된 다문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여전히 짙다. 울산을 비롯해 전국 산업현장에서 숨지는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 11년간(2012~2022년) 한 해 평균 108명에 이른다. 사고재해율(2022년)도 전체 노동자(0.49%)보다 외국인 노동자가 0.87%로 높다. 경남 양산 한 제조업체 대표가 기계결함을 알고도 방치해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를 낸 혐의로 울산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자, 이를 중형으로 여길 만큼 우리 사회의 책임 의식은 미약하다. 지난달 19일에는 울산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체불 임금을 해결하라며 타워크레인에 올라 위태로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그의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봤다. 지난 5년간(2019~2023년)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총 5670억 원이다.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며 가장 낮은 임금조차 제때 받지 못한다. 최근 충북에서 일명 ‘자국민보호연대’란 허울 아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폭행, 금품을 갈취한 사건은 공분을 자아낸다. 형태와 정도만 다를 뿐 부울경에서 이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동착취 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손이 급하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놓고 전후 사정은 무시한 채 기계적인 단속과 추방을 반복하는 악순환은 근절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고충이 더 큰 법이다. 다문화사회의 제반 문제를 다룰 이민청 설립 등이 국가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지역사회도 외국인과의 공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울산 총선 당선자 주요 공약에 이주노동자 지원책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유감이다. 다문화는 이제 포용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공존의 시험대에 오른 울산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산업계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중앙로365] '정글' 속 한국의 생존과 번영
2024년 현재 국제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최고의 혼돈 상황이다. 세계적으로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유럽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이 시작한 가자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대량 학살)급 공격이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오랜 ‘그림자 전쟁’이 군사 공격으로 전환되면서 5차 중동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렇듯 국제 질서가 ‘신냉전’으로 변화하면서 국제 사회의 본질인 정글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 사회는 최고의 혼돈 상황 지구촌 전쟁 등으로 ‘신냉전’으로 변화 북한, 정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경제, 군사 분야에서 지원 확보해 과거 성과 자화자찬만 할 게 아니라 윤 대통령 외교안보정책 재구성 필요 이런 시점에 한국은 어떻게 생존과 번영을 확보할 것인가? 먼저 북한의 움직임을 보자. 북한은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온다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통일을 전제로 한 특수관계’에서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올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대외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중국·러시아와의 연대 및 미국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제시했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하고, 러시아에 상당수의 포탄과 탄도미사일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연료와 물자를 지원받고, 최근에는 러시아에 동결돼 있었던 계좌에서 900만 달러(119억 원)를 인출했다. 북한 경제에 내린 ‘단비’이다. 또 불안한 중동 정세를 배경으로 북한은 오랜 우방 이란과 탄도미사일과 핵기술 분야 협력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 1월 초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김정은이 직접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위로 서한을 보내는 등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북한은 ‘신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경제, 군사 분야의 지원을 확보한 것이다. 한편,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축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힘을 통한 평화’에 근거한 억지 정책을 펴고, 한미일 3국 군사 공조는 물론 나토를 포함한 주요 우방국과의 안보 협력까지 강화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동맹 및 서방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지난 2년(2022~2023년) 동안 총 16회 25개국에 걸쳐 해외 순방을 했다. 이렇듯 열정적으로 해외 순방을 수행해 온 대통령이 4·10 총선을 50여 일 앞둔 2월 13일 독일·덴마크 국빈·공식 순방을 급거 취소했다. 국내 선거를 우선시해 외교 결례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후반으로 떨어졌다. 또 외신들은 윤 대통령이 ‘레임덕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흥미로운 점은 총선 직후 개최된 4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자신의 큰 외교적 치적으로 강조한 사실이다. 1년 전 취임 1주년을 맞이해 개최된 국무회의(2023년 5월 16일)의 발언과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급격하게 변해 온 국제 정세와 한반도 상황이 대통령의 인식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4월 25일 대통령실은 홈페이지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 #대한민국#대통령#윤석열’을 게재했다. 중국 견제와 한미일 연대 강화를 목적으로 임명된 미국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이 행한 “윤석열-기시다 노벨평화상 감” 발언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그 이유 역시 취임 초기에 행한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 관계 조성과 견고한 한미일 협력 체계 출범’이었다.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한국에 있어 튼튼한 한미 관계와 안정적인 한일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게 될 북한-중국-러시아 연대의 고착화 차단도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중국 및 러시아와 소통해야 한다. 또 북한의 한국 배제 전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억제 전략과 함께 대화를 통해 남북 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일은 과거의 성과인 한미 관계, 한일 관계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정글화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한국이 생존과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외교안보정책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편집국에서] 채 상병 사망의 진실을 알고 싶다
평소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높은 편은 아니다. 매일의 바쁜 일상 탓에 정치 이슈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핑계 같은 이유가 되겠고, 가급적 그쪽과 거리를 두는 편이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가벼운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달 간은 정치 이슈가 꽤나 신경이 쓰였다. 지난 달 10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가 여느 때처럼 촉발제가 됐다. 고물가, 의대 정원 증원 사태,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으로 급부상했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 장병 가운데 한 명인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데서 시작한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렸다. 영상에서 아들의 실종 사실을 전해듣고 현장에 방문한 채 상병의 아버지는 “어떻게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애를 물 속에 보낼 수가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 아이 어딨어요. 걔 외동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요. 네?” 채 상병 어머니의 울부짓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 진행 상황은 알려진대로다. 요약하자면,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이후 현장 조사와 장병 9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질의 조사를 거쳐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간부에게 과실치사혐의가 있다고 초동수사 결론을 내렸고, 이를 해병대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면 보고한 뒤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북지방경찰청에 이첩했다. 하지만 사건 이첩 과정에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은 갑작스레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경찰로 갔던 조사 기록은 곧바로 당일 저녁 다시 국방부 조사본부로 돌아왔다. 이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리기 직전에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기록이 나오면서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국방부의 재조사에서는 사단장 등 6명이 혐의자에서 제외돼 대대장 등 2명으로 줄었고, 수사를 맡았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되레 집단항명수괴죄(이후 항명죄로 변경)로 기소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을 문제 삼아,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전 장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면서 더디지만 현재까지도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의혹에 기름을 붓는 일도 있었다. 공수처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3월 4일 이 전 장관이 난데 없이 호주대사로 임명된 일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까지 내려졌던 이 전 장관을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하자, 민심이 들끓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9월 8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했다. 특검 수사 대상은 크게 두 갈래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진상 규명과 사건 수사 과정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6일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당 의원 181명의 동의를 얻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졌고, 지난 2일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과 함께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경우 오는 28일께 다시 한번 국회 표결이 진행되고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새로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두고 양당이 주장하는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에 따른 디테일한 근거와 논리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것들은 평범한 국민들에겐 잘 공감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좋겠다. 총선으로 민심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왜 또다시 정치적 셈법을 따지고 유불리를 논하고 권력 뒤에 숨으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꽃다운 청춘’ 채 상병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가 잘못해서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지시와 시스템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군도 나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고한 죽음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는 게 공정하고 상식적이다. 어떤 이는 적어도 국민이 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어떻게 나라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오는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자회견을 예고한 윤 대통령이 소통과 수용의 자세를 보여줄지, 이목이 집중된다. 김경희 편집부장 miso@busan.com
[오션 뷰] 바다 환경교육 최적지, 이점 살려야
얼마 전에 벚꽃의 만개를 즐겼던 것 같은데 어느새 5월이다. 날씨마저 더워지면서 벌써 여름 더위를 연상케 한다. 기상청 등이 제작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상기온과 극한의 추위, 가뭄과 집중호우 등 양극화된 날씨로 인해 심각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겪고 있다. 이처럼 유례가 없던 이상기온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해수면 평균 온도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10년 기간 두 번째로 높았고 해수면 또한 1993년 이후 가장 높았다.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양식 생물이 대량으로 폐사해 438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와 뚜렷한 삼한사온(三寒四溫)을 자랑하던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후 패턴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기후변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 대한 연례 보고서(2024)에 따르면 올해 세계 GDP 성장률은 2.7%에서 2.4%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느린 팬데믹 회복과 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한 국지적 갈등과 함께 최근 기후 관련 피해와 임박한 기후 관련 위험 등 여러 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고서는 또 올해에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강렬한 폭염과 큰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쌀 생산량의 대폭 감소를 우려했다. 올봄까지 계속될 엘니뇨의 영향에 의한 태평양 표층수의 온난화로 인해 해양 생태계 조건에도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이어 지구온난화로 중남미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어업이 중단될 가능성을 포함해 아시아의 강수 패턴도 영향을 받아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에 따른 농업 생산량에도 변화를 예상했다. 우리는 이미 각종 언론 매체나 신뢰성 있는 기관들의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 많이 접해왔으며 문제의 심각성도 깊이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심각한 지구의 아픔이 자신의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전 지구적 목표로 ‘지속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SDGs)’가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국가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목표 설정과 인프라 강화 그리고 각종 제도의 재정비가 시도된 지 8년이 됐다. 하지만 많은 국제기구의 연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현 추세로는 달성 가능한 세부 목표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4). 그렇다면 과연 우리 부산은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부산시도 2020년도에 ‘부산 지속가능 발전에 관한 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근거로 ‘B-SDGs(부산형 지속가능 발전 목표)’ 수립을 통해 해양도시 부산에 맞는 기후변화 대응력을 높이고 해양생태계의 자연성과 건강성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기후변화교육센터의 운영도 발표했는데 지금쯤 과연 이러한 정책들이 당초 설정된 목표에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 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부산 방문객의 방문지 결정 호감도 조사 결과 수족관이 상위 순위에 있었는데, 실제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부산의 수족관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해양수산부 통계에 나타나 있다. 이는 부산이 자연스러운 바다 환경교육의 장소로 매우 적합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국의 경우 지역 수족관은 단순히 해양동물의 보존과 전시, 관람의 차원을 넘어 해양생태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등 청소년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호주의 모나쉬 수족관, 영국의 런던 수족관 그리고 미국의 어린이 박물관 등이다. 이들은 단지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해양생물을 보는 곳뿐만이 아니라 해양오염의 실태와 현상 그리고 대안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일본 내각부는 2018년 지자체들의 SDGs 사업 참여 독려를 위해 ‘SDGs 미래 도시’와 ‘지자체의 SDGs 모델 사업’을 시작해 올해까지 총 182개의 사업 대상을 선정했다. 각 지자체의 주요 산업과 여건 등을 고려해 민관 협력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우리 부산도 민간 또는 NGO 단체와 지자체가 상호 협치 관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지역 주민과 부산 방문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전문 교육환경 또는 인프라를 구축·운영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기후변화와 관련된 해양환경 보존 의식과 실천 의지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곧 해양수도 부산의 위상을 정립하는 일이고 미래 세대에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해양환경을 물려줘야 할 현세대의 책임이다.
[기고] 바다숲의 무한한 가치
숲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막아주고, 서식 동물에게는 자라나는 공간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숲에 나무가 사라지면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된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바다에서 자라는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는 다양한 생물들의 보금자리이자 먹이원이 되어주고, 어린 물고기들에게는 좋은 은신처가 되어준다. 그래서 바닷속 해조류 군락지를 ‘바다숲’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수온 상승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해조류를 먹고 사는 해양동물(조식동물)의 먹이활동의 증가 등으로 석회조류가 암반을 뒤덮어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바다사막화)이 발생한다. ‘갯녹음’은 얕은 바다를 뜻하는 ‘갯’과 해조류 잎이 녹는다는 뜻에서 ‘녹음’을 합친 말이다. 해조류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면 자연적으로 되살리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바닷속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해조류를 바닷속 암반 등에 이식하는 사업을 펼쳐 왔다. 이러한 바다숲 사업은 4년을 주기로 이루어진다. 사업 수행에 앞서 국내 연안에서 해조류가 자라기 좋은 장소를 선정한다. 사업 시작 후 1년차에는 자연 암반 등에 해조류 포자가 잘 붙어 자랄 수 있도록 부착기질 개선을 실시하고, 해조류 이식을 실시한다. 해조류 이식 방법은 유속 및 풍랑 등 환경적 요소를 견딜 수 있도록 자연석 또는 별도의 시설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후 2~4년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다숲을 가꾸는 기간이다. 조식동물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 밀도를 낮춰주고, 해조류 성장에 방해가 되는 폐기물도 수거한다. 이식한 해조류가 사멸한 경우에는 보식작업을 통해 안정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사업 기간(1~4년차)동안 사업의 효과 검증을 위하여 관련 지침에 따라 효과조사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바다숲의 범위를 확장하여 해초류인 잘피(거머리말)숲도 적극 조성하고 있다. 잘피숲도 적지조사 이후 4년간의 사업 기간을 가진다. 잘피는 6~8월을 제외하고 이식하고 있는데, 이때 점토 및 한지법, 철사고정법 등 한국수산자원공단이 보유한 특허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성체 이식 외에도 친환경 팜사망을 활용한 씨앗망 설치, 독살 설치 등을 할용한다. 잘피숲도 마찬가지로 관련 지침에 따라 효과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바다숲은 앞서 말한 해양생물의 산란·서식·은신처 기능 외에도 인간에게 매우 이로운 존재다. 해조류는 우리의 식탁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청정 바이오 에너지원, 의료·약품 쪽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특히 국내외 탄소중립 이슈가 대두됨에 따라 새로운 탄소흡수원, 블루카본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곧 있을 5월 10일은 바다식목일로, 바다숲에 대한 대국민 관심을 북돋우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올해 제12회를 맞이하는 바다식목일 기념행사는 정부, 민간, 학계 등 국내외 전문가가 모두 모여 바다숲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는 국제포럼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기념행사를 통해 탄소흡수원으로서 바다숲을 재조명하고 다양한 미래 가치를 확인하는 공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바다식목일 기념행사는 바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고, 바다숲 조성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취지를 살려 전국에서도 연계하여 진행된다. 국민의 작은 관심과 움직임이 더해 바다숲의 중요성을 함께 공감하고 동참하는 기념일이 되기를 바란다.
[김건수의 지금 여기] 홍세화, 그리고 진보정당의 길
지난 부산 총선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역을 꼽을 때 연제구를 빼놓기 힘들다. 노정현 후보의 선전은 소수정당인 진보당의 기치 아래 거둔 결실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었다. 노 후보는 여론조사 때마다 오차범위 밖 우세로 1위를 달리면서 한때 2위 국민의힘 후보와의 격차를 20%P 가까이 벌리기도 했는데, 부산에서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이변이라 할 만했다. 야권 단일화 경선 승리가 주효했다는 분석, 결국 개인의 역량이 일궈낸 성과라는 진단 등이 나왔다. 어쨌든 노 후보는 이를 동력 삼아 내처 당선의 문턱까지 내달렸던 것이다. 물론 총선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보수 표심의 막판 결집 때문인지 노 후보는 8.83%P(1만 1109표) 차이로 낙선했다. 부산에서 진보정당의 첫 국회 진출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낙담했다. 행정·사법 기관이 몰려 있고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연제구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보수정당이 승리한 지역이다. 기존 진보정당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곳과 정치 지형이 사뭇 다르다. 여기서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절반 가까운 표를 얻었으니 당락을 떠나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 장면은 이번 총선의 또 다른 안타까운 장면과 교차하면서 부딪친다. 진보정당 최초로 5선에 도전했던 심상정 의원의 총선 패배와 정계 은퇴 선언. 정의당은 녹색당과 합당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으나 단 1석도 얻지 못한 채 20년 만에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거대 양당의 거센 대립 구도를 감안한다 해도 충격적인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녹색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당의 몰락은 이번 총선 결과가 만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보당이 지역구 1석을 획득한 것이 전부다. 얼마 전 타계한 홍세화 선생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념과 진영의 오른쪽은 물론이고 민주 세력 나아가 진보 좌파에 대해서도 엄정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의 생애가 겹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관용) 개념을 전했던 작가이자 언론인·사회운동가로서의 삶 자체가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여정이었다. 그는 나이·경력·권위 따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웠다. 2011년 진보신당 당대표에 출마할 때 진보정당을 상징하는 노회찬 의원 등 핵심 인물들의 탈당을 매섭게 질타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에게 똘레랑스는 무조건적 관용을 뜻하지 않는다. 똘레랑스 안에 기본적으로 비판적 정신이 내재돼 있다는 의미다. 살아생전 그가 귀히 여긴 또 하나의 덕목은 ‘실천’이다. 무수한 강연과 대화에서 그는 설파했다. “행동으로 증명되지 못한 도덕적 우월감은 위선이자 도덕의 개념을 타락시키는 죄악이다.”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면서 소유와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586 세대’의 타락을 아프게 꼬집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이성과 계몽의 힘을 신뢰하면서도 이론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직접 실행에 옮기는 실천가. 이게 그의 진면목이었다.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긴 한 마디는 ‘겸허함’이었다고 한다. 냉철한 비판도 중요하고 철저한 실천도 소중하지만,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은 겸손이어야 한다는 것.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세상을 헤아렸던 고인의 삶이 바로 그랬다. ‘오늘날 좌우 진영이 공히 겸손을 모르는 오만함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면 그의 삶과 죽음이 온통 그런 경종으로 들린다. 대한민국의 진보정치가 소멸의 위기에 내몰렸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파다하다. 거대 양당의 완고한 대립 구도라는 외적 요인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구현해 내지 못한 내부적 요인도 크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가치를 의제로 만들어내야 하는 진보정치의 소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노조 바깥의 영세 기업 노동자들이 있고,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계층이 존재한다. 진보정당이 있어야 할 곳은 이런 자리다. 보다 낮은 곳에서 공동체의 그늘과 약자들의 아픔을 챙겨야 한다. 국회 의석을 못 얻었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특정 계층과 이슈를 대변하는 정책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은 흔들림 없이 타진돼야 한다. 지금 거대 양당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한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고착화하는 양당 독점 구도를 깨고 다양성이 대변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의 길은 다시 열려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통찰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생전에 홍세화 선생도 곧잘 언급했던 말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김은영의 문화시선] '옥토버 부산…'이 뭐길래
오는 10월 개최 예정인 부산형 융복합 전시컨벤션 스페셜 위크 ‘옥토버 부산페스티벌’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칭이지만 ‘옥토버 부산페스티벌’이라고 해서 맥주 축제인 줄 알았다” “메가 이벤트 개념으로 보면 취지가 나쁜 것 같진 않다” “안 그래도 부산은 10월에 축제가 많은데 숙박·교통난이 벌써 걱정이다” 등이다. 부산시는 이번 행사를 치르기 위한 공동 주관사로 L컨벤션을 지난달 22일 결정, 고시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전시컨벤션 통합 운영 지원 예산은 최대 5억 원이다. 통합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콘퍼런스 개최, 홍보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이 유력 모델이라고 한다. 시 담당 부서 관계자와 정무 진용, 시 출자출연기관 고위급 인사들은 지난 3월 SXSW 단체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SXSW는 음악과 영화 페스티벌, 콘퍼런스, 인터랙티브, 전시회 등이 함께 열리는 종합 예술 축제다. SXSW를 다녀온 A 씨는 “SXSW 참가자가 ‘내돈내산’ 유형이라면, 우리는 델리게이트 대부분을 초청하는 상황이고, 오스틴이 반경 2㎞ 남짓 구간에서 모든 행사를 치르는데 우리는 벡스코, 영화의전당, 해운대, 부산문화회관, 삼락공원으로 흩어져 있어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이 정한 통합 대상은 △플라이(FLY) 아시아창업엑스포(9월 30일~10월 2일) △부산디자인페스티벌(9월 30일~10월 2일) △부산월드크리에이티브페스티벌(10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10월 2~11일) △데이터 글로벌 해커톤(10월 4~6일)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10월 4~8일) △국제록페스티벌(10월 4~5일) △국제음식박람회&마리나셰프챌린지(10월 4~6일) △수제맥주페스티벌(10월 5~6일) 등이다. 이 밖에 부산소공연장연합회가 주관하는 ‘2024부산원먼스페스티벌’도 시책에 동참하는 의미로 7월에 이어 10월 개최를 확정했다. 그런데 문화예술계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불만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월엔 민간 공연 자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숙박, 교통에 이어 공연장 수급이 걱정돼서다. 록페스티벌 팬들 커뮤니티에선 “BIFF 기간과 겹친 지난해도 숙박이 골치였는데 올해는 경전철을 이용해 김해 쪽에 숙소를 잡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통합 브랜드 전략도 좋고, 도시 홍보도 좋은데, 이미 잘하고 있는 행사를 한데 모아서 그럴듯하게 포장만 하는 일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일단 첫해 성과를 보고 후속을 논의하겠지만, 시너지만큼이나 개별 콘텐츠가 가진 정체성도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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